데미안, 헤르만 헤세

2020. 1. 5. 10:43books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진정한 자아로의 투쟁은 자신이 살아왔던 세계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과도 같다는 것을 헤세는 새가 태어나는 과정을 인용함으로써 그려냈다. 그 과정 속에서 기존 도덕규범에 던지는 회의와 질문들은 구조적으로 핍박받고 터부시된다. 그 과정은 분명 험난하고, 좁은 길이다. 이에 많은 이들이 넓고 편한 길을 찾아 애초부터 그 험난한 길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분명 그 험난한 길 위의 수많은 질문들은 끝에 완전한 자아에 다다르게 한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며 ‘빛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던 주인공 싱클레어는 학교에서 한 불량배에 의해 ‘어둠의 세계’가 주는 숨막히는 압박을 경험하고, 데미안이 이를 해소해준다. 그러면서 그는 싱클레어와 기존 세계관과는 대비되는 세계관에 관한 대화를 통해 싱클레어의 ‘빛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데미안이 가한 균열은 외부로부터의 균열이었지만, 싱클레어는 성장하면서 성욕에 눈을 뜨고 술을 마시게 되면서 내부로부터의 세계의 균열을 맛본다. 이러한 내부로부터의 균열은 그 구원을 외부로부터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싱클레어는 괴로워한다. 하지만 이후 피스토리우스와 에바 부인, 데미안과의 대화, 전쟁 참전을 통해 싱클레어는 자신을 둘러쌌던 반쪽짜리 세계에서 벗어나 온전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데미안은 더 이상 싱클레어의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자아 즉, ‘압락사스’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압락사스는 무엇인가? 데미안은 기존 기독교 사상과 대비되는 견해를 내비치며, 기성 사회규범과 종교의 눈가리개를 벗고 우리 개개인이 온전히 압락사스, 선이자 동시에 악인 이 세계의 진정한 모습과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이로써 ‘빛의 세계’에서만 양육되는 것이 아닌 온전한 세상 속에서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주체적으로 삶을 이끄는 완전한 자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 것은 우리를 안주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의 악으로부터 차단되어 마치 요람 속의 아기처럼 살아가는 것은 우리를 약하게 만든다. 그 과정이 험하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선과 악을 바로 직시함으로써 온전한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완전한 자아에 이르는 길일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모님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한 성인으로서 사회로 나설 준비에 마음이 초조해진다. 그럴 때마다 데미안처럼 기존 사회의 틀 안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내가 살아가는 세계를 살아내겠노라고 다짐하게 됐다. 제목을 싱클레어가 아닌 데미안으로 지은 헤세는 이 책이 데미안처럼 독자들에게 알을 깨고 나오도록 돕는 친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세계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그 세계 속에서 선의 영역을 확장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