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31. 17:17ㆍbooks
솔직히 처음에는 책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그 마음, 그 투정스러운 말투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힘 빠지는 듯한 느낌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공부는 하기 싫고 놀고 싶어, 다 때려치우고 눕고 싶어, 그냥 세상이 멸망했으면 좋겠는데 막상 생각하면 좀 무섭긴 하네, 이 정도의 알량한 투정으로 느껴졌다. 떡볶이를 먹고 나면 뭐, 그다음에는 죽을 건가? 죽음을 쉽게 입에 올리는 것에서 괜스레 불쾌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제목의 흡입력과 이목을 끄는 것 하나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며 가만히 생각해봤다. 나라고 크게 다른가? 어쩌면 내 안에도 그 누구보다도 격렬히 투정부리는 어린아이가 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나는 솔직하지 못하거나, 그런 내 모습이 싫어 내 모습 중 하나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애써 나를 좋은 모습으로만 포장하려 애써왔던 것일 수도 있다. 책 표지에서부터 작가는 얘기한다.
“자기가 지금 힘든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아요. 이유 없는 허전함에 시달리면서.”
저자는 가벼운 우울증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증세를 겪으며, 상담심리사 선생님을 찾아간다. 책의 형식은 저자와 선생님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한 번쯤은 들은 적이 있는 내면의 찌질한(?) 목소리들을 ‘나’는 선생님께 털어놓고, 선생님은 그를 위로하거나 다르게 생각해보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가정사로부터 비롯된 우울, 말로 표현하기조차 뭐 할 정도로 알량한 시기, 질투, 열등감, 소외감, 외로움에 잠식되어 가는 우리 일상의 순간들을 풀어냈다. 특히나 요즘같이 SNS가 활성화되어 있을수록 남과의 비교로 인하여 그 속이 썩어 들어가지만, 그걸 인정하는 순간 찾아오는 자괴감, 열등감, 그리고 자신에게 찍힐 부정적 낙인들이 두려워 애써 묻어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도 그중 한 명으로서, 대신 목소리를 내고 위로받는 경험을 공유했다.
우리 모두 외롭다.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속으로 경미하게나마 마음의 병을 앓고 있으며, 때로는 내면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은 채 힘들어한다. 타인을 바라보며 시기와 질투를 느끼기도, 타인을 향한 내면의 폭력성을 발견하여 놀라기도 한다. 이는 곧잘 자책과 낮은 자존감으로 이어져 계속되는 악순환을 낳는다. 사실 이를 인지하지조차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면서 고통은 계속해서 악화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나를 온전히 마주하는 것밖에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와 같은 해결책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가 느리지만 서서히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용기있게 나눔으로써, 독자들에게 위로가 된다.
마음의 상처는 겉으로 보이는 상처보다 눈에 띄지 않는 것 때문에 경시되는 경향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우리는 이에 대해 조금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겉으로부터 내가 원하는 모습을 상정해놓고 내 내면의 목소리를 묵살해버리는 것 말고, 남과 비교를 통해 질투나 시기심에 나를 억지로 가식적인 모습에 나를 가두는 것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내 내면의 목소리, 그 어린 마음에 귀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성장을 위해 고민을 그쳐서는 안 된다. 이 책에서 상담심리사 선생님의 역할처럼, 내 어린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도록 스스로 문답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그랬듯이 직접 상담심리사 선생님을 찾아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내가 왜 힘든지,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이 가뜩이나 힘든 사람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애써 괜찮은 척, 마음을 묻어두고 사는 것이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것인양 살아가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봤다. 마음속 깊은 우물을 들여다볼 때이다. 거기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들여다보지 않으면 요즘 우물물이 왜 이상한지 알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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