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 내 치즈는 어디에서 왔을까?, 스펜서 존슨

2020. 5. 2. 12:23books

 

동화는 항상 메시지가 있다. 그것도 강력하고 의미 있는 메시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희생, 도전, 용기, 나눔, 배려 등,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필요한 자세들을 배울 수 있다. 어른들도 동화가 필요하다. 사실 어른들이야말로 동화가 더욱 필요하다. 반복되는 일상과 여기저기 치이는 바람에 이미 굳어져버린 마음에 해독제가 필요하다. 날카로워졌거나, 같은 자리를 맴돌거나 더 이상 나아갈 힘이 없어 주저앉은 이들에게 스펜서 존슨은 우리가 어린 시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던 이야기처럼 귀여운 비유로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비유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맥락이 있는 이야기를 통한 가르침은 쉽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비유는 곧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다. 예수님도 비유를 통해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자주 가르치시곤 했다. 배워야 할 자세를 이야기 속에 녹아든 비유를 통해 그 적용과 결과를 목격하고, 내 삶에 비추어 볼 수 있다. 상황의 변화에 따른 빠른 대처의 힘, 신념의 수정과 그에 따른 실천, 끊임없는 도전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 이 가치들을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와 <내 치즈는 어디에서 왔을까?>에서 배울 수 있다. 단순한 이야기지만, 단순하기에 강력하고 그 의미가 깊다.

 

꼬마인간 헴과 허, 그리고 생쥐 스니프와 스커리가 있다. 이들은 미로 속에서 산다. 이 미로는 수많은 방들과 막다른 길들로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다. 이 넷은 치즈 정거장 C 복도 끝 방에서 엄청난 양의 치즈를 발견하고 매일 먹을 것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치즈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생쥐 스니프와 스커리는 그 즉시 새로운 치즈를 찾아 다시 미로 속으로 탐험을 떠나지만, 헴과 허는 망연자실하여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좌절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허는 곧 상황은 언제든지 바뀌는 것이며, 바뀌는 환경에 적응해야 함을 배우고 스니프와 스커리처럼 미로로 탐험을 떠난다. 그리고 곧 치즈가 가득한 새로운 방을 발견한다.

 

여기까지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내용이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수시로 변하고, 이에 바뀐 환경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에 맞게 우리 스스로가 유연히 변화할 수 있어야 함을 배울 수 있다. 지난 시간과 익숙함을 고집하는 것은 우리를 도태되게 한다. 물론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렵지만, 그 길을 걸어내야만 새로운 치즈를 만날 수 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후, 저자 스펜서 존슨에게 이 질문이 쏟아졌다고 한다. “치즈를 찾지 않고 홀로 남은 헴은 어떻게 되었나요?” 사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낸 허보다는 헴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나 보다. 변화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치즈를 찾아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치즈가 어디로 갔는지, 당장 내 앞에 놓인 길이 있긴 한지 감조차 잡히지 않을 때가 많다. 스펜서 존슨은 이번에도 친절하게 <내 치즈는 어디에서 왔을까?>를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용기를 전한다.

 

돌아오지 않는 허를 기다리며 헴은 배고픔에 지쳐갔다. 그러면서 ‘허는 왜 돌아오지 않지?’, ‘나는 왜 허를 따라가지 않았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으면 굶어 죽겠다는 생각에 헴은 결국 연장을 들고 미로 속으로 길을 나서기로 한다. 걷다가 헴은 미로 벽에서 허가 쓴 글귀를 발견한다.

 

‘과거의 신념은 우리를 새 치즈로 이끌지 않는다.’

 

지쳐 쓰러져 고달픈 잠에 빠진 헴 앞에 호프가 나타난다. 호프는 헴에게 사과를 건넨다. 치즈가 아니면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던 헴은 배고픔에 못 이겨 사과를 베어 물고, 치즈 이외에도 먹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발견한다. 이후 헴과 호프는 같이 미로 속을 걷게 되는데, 호프가 헴에게 왜 연장을 들고 다니는지 묻는다. 헴은 이전에 이 연장들로 벽에 구멍을 내어 치즈를 찾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호프는 상황이 결코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다른 전략을 위해 연장을 버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묻는다. 이에 헴은 그럴 순 없다며 화를 내지만, 시간을 두고 생각하다가 허가 쓴 글귀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에 헴도 깨달은 것들을 미로 벽에 적는다.

 

‘신념은 내가 사실이라고 믿는 생각이다.’

‘과거의 신념이 우리를 가둘 수 있다.’

‘어떤 신념은 우리를 주저앉히고, 어떤 신념은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우리는 마음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신념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신념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념을 선택하는 장본인이다.’

 

헴은 신념의 힘을 깨닫고, 신념을 바꿔야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른 헴은 그러나 지금까지 자기가 시도한 수많은 방법들이 소용이 없었음에 잠시 좌절하지만, 그 생각 자체가 한계를 두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에 한계는 없다!’

 

호프가 ‘미로 밖’에 대해 이야기하자, 처음에는 헴이 미로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자신이 아직도 생각에 한계를 두고 있음을 깨닫고 모든 가능성을 열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는 이제 연장을 버리기로 하고, 호프의 촛불과 함께 미로로 다시 길을 나선다.

 

‘때로는 볼 수 있기 전에 믿어야 한다.’

‘생각하는 모든 것을 믿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마침내, 미로 밖에 다다라 지금껏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밝은 세상을 마주한다. 그리고 허와 스니프, 스커리를 다시 만나 수많은 먹을거리를 누리며 살아간다.

 

우리의 신념을 재정립해야 한다. 물론 대전제가 되며 변하지 않는 신념 또한 있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서로 사랑해야 할 존재’라는 것과 같이 말이다. 하지만 그 이외에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우리의 신념이 우리를 괴롭게 하는 장본인일 때가 많다. 과거의 신념을 버리지 못하고, 그것을 버리는 것이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만 같아 두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헴이 그랬듯, 신념을 버린다는 것이 우리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한 층 더 성장하며, 상황에 유연히 대처하여 위험을 헤쳐나갈 힘을 얻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급격히 변화한 상황에 한탄만 늘어놓을 때가 있었다. 예전에는 안 이랬는데, 왜 이렇게 된 거야,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과거에 대한 고집만이 나를 괴롭게 하고 있었음을, 내가 바라던 과거처럼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음을 말이다. 결국 변해야 하는 것은 나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실제로 마음의 응어리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바뀐 환경에 한탄하기보단, 이 새로운 환경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해냈다.

 

때로는 사고방식 전체를 뒤흔들어야 할 때가 온다. 내가 아직 그러한 수준의 변화를 겪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고체계 밖의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믿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믿음 가운데 생각하는 모든 것이 믿음의 대상이 될 필요는 없다. 한가운데를 헤매고 있는 미로 밖을 상상하고 믿었던 헴처럼, 두려움을 믿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 헴처럼 말이다.

 

단순한 이야기 속에 소중한 가치들을 녹여낸 스펜서 존슨이 존경스럽다. 그가 췌장암 투병 생활 중에 자신의 종양에게 ‘더욱더 사랑과 감사가 넘치는 사람이 되게 해 줌에 감사’한다고 쓴 그의 편지를 보며 나 또한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그가 남기고 간 선물을 기억하며 내 미로 속을 걸어가는 것이 그가 일러준 가치들을 실천해나가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