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

2020. 4. 26. 08:35movie

제목이 특이하다 싶으면 열에 아홉은 일본 영화였다. 제목이 문장 형태(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거나, 단어들의 나열(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거나 했다. 일본어 특유의 그 감성 때문일 텐데, 일본어를 배워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 확실히 그 덕분에 제목 자체만으로 흡입력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자주 그 영화 내용에 대한 정보를 접하지 않은 채 본다. 예고편도 딱히 보지 않는다.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닌데, 아무것도 모른 채 봤을 때 더욱더 느끼는 게 많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어이없는 기대에서 비롯된 습관이다. 이 영화 또한 제목의 흡입력과 더불어 넷플릭스 선택 창 사진이 마음에 들어 보기 시작했다. 뻔한 일본 로맨스겠거니, 혹은 힐링물이겠거니 하면서 봤고,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렸고, 그만큼 마음을 깊이 울렸다.

 

 

“이름이 뭐야?”

“조제.”

“조제라. 좋은 이름인데?”

 

사실 조제라는 이름은 그녀가 좋아하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다. 그녀는 할머니가 밖에서 주워온 책들을 읽으며 그 세계에서 자유로이 헤엄친다. 현실에서 그녀는 하반신이 불편한 장애인이다. 그녀는 사람이 없는 이른 아침에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 속에서 세상을 구경하며 산책한다. 웬 할머니가 아직 어두운 아침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니, 주변에는 이상한 소문이 무성했다.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는 도중 그 이상한 소문을 듣고 별 사람이 다 있네, 생각하던 츠네오는 실제로 그 의문의 유모차와 충돌사고(?)를 겪는다. 그것이 츠네오와 조제의 첫 만남이었다. 비록 그 만남의 시작은 이상했지만 점차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고 빠져든다.

 

 

조제의 집에 츠네오가 뻔뻔하게(조제가 이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싫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자주 찾아가며 조제와 츠네오는 서로 서서히 마음을 연다. 그러던 어느 날, 츠네오가 조제에 대해 함부로 했던 말(마룻바닥으로 다이빙을 한다는 말)을 조제가 듣게 되면서 조제와 츠네오는 멀어진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취업 준비 차 인터뷰를 하던 중 조제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단 사실을 알게 된 츠네오는 다시 조제를 찾아간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조제와 츠네오는 교제를 시작한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연애였다. 눈에 띄는 조제의 그 불편함 빼고는 말이다. 하지만 남들과 다를 바 없었던 것만큼 그 기울어져 가는 모습 또한 남들과 다를 바 없었다. 고장난 유모차를 고쳐주지 못하는 모습부터, 가족들에게 조제를 소개하기를 망설이는 모습과 동생의 ‘지쳤냐’는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모습까지. 서서히, 츠네오는 그 사랑이 식어갔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조제는 담담히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가 담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즐겨 읽던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 때문일까? 해변가에서 츠네오와 조제가 함께 찍은 사진에서 조제의 표정이 달리 보인다.

 

 

“언젠가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네,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장애인과의 사랑’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본 건 나였다. 츠네오가 동정을 사랑으로 착각하여 조제에게 상처를 줬다고 누가 할 수 있을까? 츠네오는 조제가 찾던 책을 헌책방을 뒤져가며 찾아 선물했다. 그녀와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가 서로를 웃게 했다. 조제라고 그 동정과 사랑을 구분 못했을까? 츠네오는 사랑하는 조제가 갖고 싶은 것을 주고 싶었고, 함께 있을 때 웃음이 나고 행복했다. 조제와 츠네오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똑같이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리고 남들이 다 그러하듯 마찬가지로 사랑이 변했을 뿐이다. 우리 모두 결점을 가진 사람들로서 연애를 한다고 생각할 때 조제의 결점은 다리가 불편한 것, 단지 그 뿐이다.

 

 

사랑이 변할 때 조제는 좀 더 성숙했다. 조제는 부모님께 인사하러 가는 여행이 어떤 의미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헤어스타일도 신경 쓰고, 도시락도 준비하고, 코지가 전날 와서 인사하러 가는 것의 의미를 얘기하며 무슨 짓이냐고 화를 낼 때도 말로는 “바보 같은 소리 하네”했지만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츠네오의 마음을 알아채고 바다를 보러 가자고 한다. 어쨌든 수족관은 닫아 물고기를 보지 못했으니까, 바다로라도 마음을 달래자는 마음으로 포장했지만 츠네오가 자신을 소개하기 버거워하는 마음을 알아챈 것이다.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바다 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아.”

 

 

조제는 처음부터 사랑이 변함을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휠체어 같은 건 필요 없다”라고 했던 그녀지만 츠네오가 떠난 뒤에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하지만 츠네오는 이별 후 무너지고야 만다. 자신이 떠났지만 자신이 마음이 떠난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건지. 지난날의 본인의 변한 모습에 얼마큼 상처를 주었는지 깨달은 건지. 이별은 담담했을지 몰라도 시간을 두고 파도처럼 밀려들어오는 아픔에 츠네오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눈물 흘린다.

 

 

‘우리는 몇 달을 더 같이 살았다.

담백한 이별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아니, 사실 단 하나뿐이었다.

내가 도망쳤다.

헤어지고 친구로 남기도 하지만 조제는 아니다.

조제를 만날 일은 다신 없을 것이다.’

 

"내가 도망쳤다." 조제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아주 떼놓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사랑이 변한 본인의 마음을 들여다 볼 때 괴롭다. 분명 사랑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변해가는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츠네오는 도망쳤다. 하지만 그때의 진심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츠네오는 장애인 조제가 아닌 그냥 조제를 사랑했다.

 

이쯤에서 제목을 다시 살펴보자,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다. '조제'는 쿠미코(조제의 본명)가 사랑하던 책 속의 등장인물. 그녀가 사랑하고 닮고 싶어 했으며 내면화한 책 속 인물이다. 쿠미코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조제라고 소개하는 것에서 쿠미코의 정체성은 조제에 더 가깝다. 사실 둘을 구분 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모든 모습이 '조제'다.

 

 

'호랑이'는 조제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했으며, 그래서 ‘사랑하는 남자가 생기면 같이 보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생겨서일까. 더 탐험해 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겨서일까. 동물원에서 조제는 츠네오의 손을 꼭 붙들면서 호랑이를 본다. 호랑이는 지금까지 할머니에 의해 가두어져 마주하지 못한 세상이 아닐까? 그렇게 호랑이를 보고 나면, 덜 무서운 것들은 더더욱 그 의미를 잃고 이겨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물고기들'은 조제와 쿠미코가 묵은 숙소, ‘물고기의 성’에서 나눈 대화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물고기는 조제다. 깊고 깊은 바닷속,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살아가던 조제는 츠네오를 만나 그 암흑을 뚫고 헤엄쳐 나왔다. 그리고 이제는 그 암흑 속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돌아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츠네오를 통해 세상을 봤고, 비록 그 사랑은 영원하지 못했지만 그 사랑은 있는 그대로 묻어두고 다시 바다를 헤엄쳐 가는 것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누군가는 ‘장애인과의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정말 이 영화를 온전히 표현해내기엔 부족한 것 같다. 우리 모두 결점이 있고, 그 결점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그 결점까지도 사랑한다. 그리고 사랑은 변한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랑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평범한 사랑 이야기 속에서 그 이야기에 비친 내 시선의 방향, 그리고 돌아보게 되는 나의 결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한 이야기 속에 이렇게나 생각할 거리를 많이 담아내기란 정말 쉽지 않은데, 그걸 해내고야 마는 것이 이 영화가 이렇게 사랑받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언제 꺼내 봐도 그 숨은 의미를 더 찾아내면서 행복할 수 있는 영화. 먹먹한 가슴이 마치 무언가 가슴에 턱 걸린 것 같지만 마침내 소화해내고 나면 한층 성장한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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