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6. 22:15ㆍmovie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으로,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삼삼한 매력이 있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나 요즘 복고가 유행하면서, 돌고 도는 유행 덕분에 등장인물들의 8~90년대 일본 감성 복장이나 머리스타일 작화가 지금 봐도 어색하지 않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풋풋하니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지금까지도 이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들 중 하나일 것이다.
일본의 시골 마을 고치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 작품은 도쿄에서 리카코가 전학을 오게 되면서 시작된다. 도쿄에서 온 것만으로도 꽤나 주목받을 일인데, 리카코는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빼놓지 않고 다 잘해 주변 동급생들의 은근한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주인공 타쿠의 친구 유타카는 이런 리카코를 반장으로서 맞이하면서 좋아하는 마음을 품지만, 타쿠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리카코는 하와이로 떠난 수학여행에서 타쿠에게 접근해 자기가 환전해 온 돈이 다 떨어졌는데 돈을 좀 빌려줄 수 있냐, 묻게 된다. 꽤나 큰 금액을 빌려간 리카코는 한동안 이를 갚지 않았는데, 어느 날 알고 보니 그 돈으로 도쿄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가려 했다는 것을 타쿠가 알게 된다. 오사카로 같이 여행을 가는 줄로만 알았던 유미가 일정과 다른 여행은 어려워서 타쿠한테 연락했던 것인데, 얼떨결에 타쿠가 그 도쿄행 비행기에 같이 타게 된다.
하지만 도쿄에서도 타쿠는 리카코의 변덕에 시달린다. 그리고 도쿄를 함께 다녀왔다는 소문이 전교에 퍼지고, 리카코가 유타카를 매몰차게 거절한 것 때문에 타쿠와 리카코의 사이는 틀어지게 된다. 사실, 작품 내내 그려지는 리카코의 모습이 썩 싹싹한 편은 아니다. 고집도 세고,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자기만 살뜰히 챙기는 모습에 동급생들과 싸워도 대차다. 바로 그 싸움 현장에 있던 타쿠는 이를 방관하기만 해서 리카코와도, 유타카와도 사이가 멀어진 채 졸업하게 된다.
졸업하고도 몇 년 후, 도쿄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타쿠는 고등학교 동창회를 위해 다시 고치로 향한다. 고치 공항에 도착하니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유타카였다. 유타카는 오해해서 미안하다며, 타쿠 너도 리카코를 좋아하는 줄 몰랐다며 해변가에서 심심한 화해를 한다. 동창회에 리카코는 결국 오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그녀를 기다리던 스스로의 모습과 함께 도쿄에서 우연히 리카코를 마주했을 때 타쿠는 알아챈 것이다. 그녀를 향했던 마음이 사랑이었음을.
결국 학원물이고, 남녀의 사랑 이야기이다. 이 두 가지의 조합은 듣기만 해도 진부함이 잔뜩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렇게 평가되지만은 않는 것은 풋풋한 감정 묘사와 캐릭터의 힘일 것이다. 타쿠의 시선으로 함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나는 타쿠와 함께 리카코를 만났다. 리카코의 모습에 미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러다가 문득문득 생각나고. 부둣가에서의 유타카의 한 마디에 비로소 지금까지의 내 마음의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그리고 타쿠는 깨달았다. 사실은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그 마음의 소리는 마치 바닷소리와 같아서, 해변가에 있으면 항상 들리지만 귀를 기울이면 그때서야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소리, 한동안 듣지 못해도 언제나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소리라는 것을 말이다.
다른 것보다도, 지금은 그 시절을 상정해놓고 표현해야만 하는 작품 속 인물들의 행동들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저릿함이 좋았다. 예를 들면 집에다 전화를 걸면 누구인지를 밝히고 친구를 바꿔달라고 해야만 대화가 가능한 것. 지금과 같이 휴대폰이 있고 전자기기가 우리 주변을 둘러싸 언제든지 상대가 무얼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고자 하면 알아내기가 쉬운 지금이랑은 사뭇 다른 그 느낌이 좋다. 그때는 불편한 줄도 몰랐을 텐데. 당장 내 초등학생 시절만 해도 공중전화로 집에 엄마한테 전화했다. 그것도 동전이 없어서 콜렉트콜로 걸기 일쑤였다. 나 또한 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 친구랑 전화해서 놀이터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다. 물론 작중배경은 내가 회상할 수 있는 시대와도 차이를 보이지만, 생각이란 원래 계속해서 가지를 뻗어나가다 보면 결국은 내게 익숙한 형태로 닿지 않는가?
배경음악의 경우도 그렇다. 이제 와서 ‘시티 팝’이라는 장르를 통해 회상하게 되는 80-90년대의 시절이지만 이 작품 속 배경음악은 그저 당시 그 시대의 음악일 뿐이다. 통통튀는 음악들이 작화랑 어우러지니 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작위적이지 않아서, 그저 그 시대의 감성과 문화가 충실했기 때문에, 작중 묘사들과 음악들이 더욱더 진실히 내 마음에 남는다.
진솔함은 남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더해진다. 문화적 요소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잠깐 다시 영화 내용으로 돌아오자면 마음도 그렇다. 시간이 지나 다시 돌이켜 볼 때, 내 마음을 다시 보며 "그땐 그랬구나" 생각하게 되니까. 어쩌면 그때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달아 성장하기도 하고. 항상 우리 마음속의 바다에는 파도가 치고 있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 그 시간 속에 쌓았던 추억들, 그 당시 느꼈던 감정들. 당장 지금을 살아내기에 바빠 그 소리를 잊고 살 때가 많지만, 가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했다.
이렇게 쓰다보니 바다가 매우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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